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2018.7.16)
큰형님 차를 타고 함께 고향으로 가는길이다.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loads" 가 절로 나온다.
고향이라고 해봤자 어릴적 깡촌에 살면서 뽕따며 누에치고 봄가을로 농삿일 거들고 겨울엔 땔나무하러 지게지고 산에 다닌 기억밖에 뭐 더있겠는가..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어났으니 배는 안곯고 자랐지만 무엇이던 아쉽고 부족하고 모자라던 어린시절 이었다.
그래도 동네에 집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지만 낯 익은 산과 강은 변함없이 푸근히 다가오니 그게 고향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60~70년대에 학교를 걸어 다니며 단어장에 영어단어도 외우곤 했는데 요즘 같아서 아마 차에치어 죽을것이다. 이길도 비포장 신작로 였던것이 널찍하게 포장이 돼있다. 82년도 이곳에서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근무 할 때만해도 비포장 이었었다.
어답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집은 일제치하 전에 지은듯한데 지금은 뜯겨서 청일 춘당에 민속촌에 가서 다시 조립해져 있다.
6.25때도 불에 타지 않았고 포탄에 맞아 지붕 일부가 부서지긴했어도 워낙 튼튼히 잘진 집이라 건재하였는데 아바지 별세후 형제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직업을 가지다보니 도저히 집관리를 할 수가 없어 마침청일에 민속촌을 짓는다는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팔아버렸다.
어릴적 옛날집에서 기둥에 박힌포탄 파편과 M1총알을 빼낸 기억이 새롭다.
이집은 그 집터에 큰형님이 몇해전에 새로 지은 집이다.
큰형수님이 꽃을 좋아해서 욕심껏 심기는 하는데 서울에서 오가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안돼 잡초밭인지 꽃밭인지 구별이 안간다.
그래도 형님 내외는 Very good 이다.
복숭아 나무에 그나마 몇개 달려 익은게 신기해서 자랑을 한다. 그런데 맛은 없었다.
삼겹살 파티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다. 오늘이 7.17일 초복인데 얼마나 더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