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는 동안 나의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2020.4.15) 1.

靑松 2020. 4. 22. 20:43

오늘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미리 사전선거를 하였기에 오전중에 볼일을 보고 점심먹고 고향으로 출발하였다.

구리고개를 넘어서니 원주보다 며칠 늦게 벗꽃이 피어 온동네가 꽃길이었다.

아래장터에서 부엉바위쪽으로 다리를 건넌후 참샘물 을 지나 잔골로 접어 들었는데 이구간이 원래 걷기 길로 만들어서 차량 교행이 좀 어려웠다. 그래도 서로 양보하며 지나가는데 벗꽃이 한창이라 보기가 좋았다.

예전 국민학교 시절 발가벗고 수영하던 학교앞 냇가는 엣모습은 간곳 없고 줄풀만 무성하였다.

그래도 면소재지 시가지를 포함해서 개울(계천)을 따라 벗꽃이 한창이라 옛날 풍경은 아니더라도 보기는 좋았다. 어릴적에는 이개울을 큰개울이라 불렀다.

면소재지에서 아래장터까지 제방둑에 벗꽃이 한창이었다.

이 돌제방을 쌓기 전까지는 그냥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제방이었는데 물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밑으로 메기같은 물고기가 많아서 친구들과 밧데리로 열댓마리씩 잡곤 하였고 겨울철 얼음이 두껍게 얼면 톱으로 두평남짓 얼음을 잘라내고 군용 E-8전화기 제네레다로 물고기를 잡아서 아래장터 사는 친구네 집에서 매운탕을 끓여먹곤 하였다.

지금은 댐을 막고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고기잡이는 고사하고 물에 발도 못담근다.





잔골에서 개울건너 바라본 초등학교이다.

면소재지와 매일3리를 연결하는 다리인데 사람만 통행할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잔골 마을 풍경이다. 예전엔 모두 논이었는데 인삼을 심었다.

어릴때는 이 다리가 없었고 섶다리를 놓았었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특히 장마전에는 다리가 떠내려 갈까봐 동네 어른들이 모두 모여 다리를 뜯어서 옮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장마가 그치면 섶다리를 또 놓았는데 다리를 놓기전 까지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업어서 학교에 등교를 시켰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었다.

원래 지명이 잔골이라서 한문으로 표기할때는 세곡이라고 쓰는줄 알았는데 장골로 표시한것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매일3리 다리에서 보뚠지쪽으로 바라본 사진이다. 이 개울에는 옛날 모래무지와 매자가 엄청나게 많아서 투망 잘하는 장씨라는 노인이 매일 고기를 잡아다 팔곤 하였다.

참샘물 쪽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언제고 한번은 이곳으로 트래킹을 해봐야겠다.

이 보는 어릴땐 없던 볻이다. 무슨 용도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소재지 제방이다. 예전에 물난리를 겪어서 제방이 높아지고 소재지가 완전히 뜯어 고쳐졌다.


소재지에서 바라본 잔골쪽 풍경이다. 예전엔 이 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