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엄 기념관은 지정면 간현웃말길 46에 자리밥고 있다.
2014년 11월에 개관하여 건물도 깨끗하고 관리도 잘돼 있었다.
조엄에 대하여는 영조때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와서 조선 백성들의 식량부족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한것 밖에 모르는데 막상 원주에 살면서도 조엄 묘소가 있는줄은 알았지만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다.
기념관에는 조엄의 생애,연보,가계도와 풍양조씨 집안 이야기,일본 통신사 행렬 그림,고구마 요리법 등등의 자료가 있었다.조엄은 간현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서울 옥수동에사 태어났다고도 하는데(원주시 관광블로그 참조) 원주시가 맞다는 생각이 드는게 조엄기념관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는 표시가 없다.영조와 정조시대에 벼슬을 하였는데 영조 이전에 현종 11년 경신대기근때에 곡창지대인 전라도에서 조차 흉년이 들고 겨울 추위에 수십만명이 얼어죽고 굶어죽거나 점염병으로 죽었다고 전라감사 오시수가 장계를 올려 구휼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아이를 버리는자가 부지기수였으며 오죽 추웠으면 남의 묘를 파헤쳐서 염한 수의을 벗겨다가 입었다고 한다. 그러고도 얼어 죽은자가 수도 없었고 특히 섬지방의 백성들은 섬안에서 몰사를 했다고 하다. 비단 전라도 뿐만이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으로 한해,수해,냉해,풍해,충해의 5재와 인간전염병,가축전염병으로 7재가되고 여기에 혹한까지 8재가 되었으니 살아 있는게 용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고구마는 맛도 좋거니와 시량으로써도 손색이 없다. 어릴적 밥 할 때면 어머니까 꼭 고구마를 깍아서 밥과같이 쪄서 식량에 보탰고 생고구마,군고구마를 끼니삼아 먹기도 하였고 60년대 국민학교 시절 수도물로 배를 채웠다고 할때에 고구마 찐것을 도시락으로 가져운 학우도 있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내내 문익점이나 조엄처럼 백성들을 이한 애민정신이 돋보이는 위인들이 생각났다.
조엄도 결국 홍국영과의 대립으로 귀양가서 죽는데 홍국영이야말로 권력을 잡기 위해 물불을 안가린 사람이라 조엄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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