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는 동안 나의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2020.4.15) 2.

靑松 2020. 4. 22. 21:25

저 건너쯤 벗꽃 사이에 보이는 곳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지금은 예전 집도 헐려 없어지고 빈터만 남았다.

내가 어릴적에는 집앞에 봇도랑이 흐르고 대장간이 있었다. 봇도랑 건너는 수풍이라고  숲이 우거진곳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방을 쌓아 없어져 버렸고 빕 뒤쪽에는 비각이라고 불리우던 열녀문인지 사당인지 있었는데 이또한 없어졌다. 또 6.25때 이곳에서 전투를하다 전사한 지역사람들의 충혼탑도 있었는데 자리를 옮뎠는지 모르겠고 모범산 꼭대기에는 예전에 공동묘지 같았었는데 면사무소가 들어섰다.



6년 동안을 굳세게 건너다닌 학교앞 다리다. 초창기 다리 난간도 시멘트 난간이었는데 이것도 바뀌었다.

이 다리 밑에서 돌을 주워다가 축사를 짓고 만리장성이라고 돌담길을 만들었는데 그당시 공부는 뒷전이고 체육시간,특활시간이나 좀 비중이 약한 교과시간에는 의례 들것 들고 돌이나 모래 나르는 것으로 팔이 떨어질 정도로 막노동을 하였다. 더욱이 중학교때 고등학교가 농업고다 보니까 퇴비와 가축 녹사료를 과제로 내주어 지게와 리어카를 동원하여 과제물 달성하느라고 곤욕을 치뤘다. 남학생이 이정도니  여학생들이 고생을 많이했다. 그당시 한아무개 교장선생님을 오죽하면 돌교장이라고 불렀을까? 그분 따님이 동창인데 귀래서 근무할때 한번 만났다.

동창 인환네 집이다.

학교뒤에 있는데 지금은 누가 월세로 산다고 한다.

예전 학교 졸업후 군대가기 전에 가끔 밤에  친구들과 놀러와서 밭에서 풋고추 따다가 소주를 먹던 장소이기도하다. 지금은 다 무너져가지만 그때가 75년도니까 45년전쯤 되는데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저멀리 어답산이 보인다.

시원이가 얻어 부치는 담배밭이다.



시원내외가 일꾼을 하나 엊어서 담배 보식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자란 고향마을 동네 입구이다. 이곳도 벗꽃이 만발하였다.

지금은 번듯한 2차건 포장도로이지만 당시에는 그냥 좁은 비포장 도로였고 그이전에는 장마에 파여나간 모래밭길이었다.





구석터 돌아가는 길이다.




구석터서 바라본 창둔지이다. 옛날에 무슨 큰창고가 있었던 가보다. 그래서 저 동네 이름도 창말이다.

이곳에서 창둔지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을 모양이다. 공사중이다.

고향집터에는 예전 집은 모두 헐고 큰형님이 조그맣게 별장을 지었다.

집터앞 풍경이다.


큰형님의 세컨하우스다.




응달말에서 바라본 양지말이다. 해가 바르게 드는 남향이라 양지말로 뷸리우던 내가 자란 동네이다.

응달말이다. 이동네는 해가 너무 일찍지니까 응달말이라고 하는데 이동네 뒷산에는 예전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산이 붉게 물든걸 보며 자랐는데 지금은 밤나무가 자연적으로 생기면서 진달래는 자취를 감추었다.

친구 시원네 집이다.

  시원네 집에서 건너다 본 구리봉이다.

이곳에서 올라가면 어렵지 않게 구리봉을 갈수 있다. 작년엔가 한번 올라 가봤는데 이제 다리가 아파서 못갈것 같다.